1.
실사영화는 영화화 발표 당시부터 왜 하필 개연성이라곤 물 말아먹은(...) 45권을 택한 건지 불만스러웠고 그래서 사실 실사판은 기대는커녕 관심조차 거의 없었어요. 볼 루트가 없을 거라 생각해서 더 그랬을 거예요. 판타스틱 영화제 온다는 소리에 엄청 놀랐으니까. 큰 기대는 없어도 온다면 당연히 봐야지! 하고 부천엘 가서 보고 나서야 45권을 선택한 이유를 깨달았어요. 45권에서 란타로가 크게 활약해서 그렇구나. 말이 닌타마 '란타로'지 이 만화는 주인공이 란타로라기보단 3인방, 조금 더 넓게 잡으면 하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란타로가 주인공으로서 부각되지 않고 서포트로 돌아도 그에 대해 불만도 위화감도 없거든요 전. 그래서 45권에도 새삼스럽게 큰 의미를 두진 않았었고. 근데 그렇구나, 닌타마를 접한 적 없는 사람들도 영화의 타깃으로 삼으려면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부각되지 않는 다른 에피소드들보단 45권의 에피소드가 더 적당했을 거예요. 거기다 란타로 반응도 '주인공답도록' 각색되었죠. 자기는 졌어도 토라와카가 종을 울렸으니까 우리가 이겼어! ^ㅁ^ 하고 좋아하던 원작 란타로와는 달리 그래봤자 내가 한 게 아닌걸... 하고 풀이 죽은 영화 란타로. 이렇게 비교해보니까 진짜 원작의 란타로는 독립된 주인공이기보다 하구미의 일부 같아요.
그런데... 그런 감정선 각색+초반 에피소드 구성은 굉장히 좋았는데. 그럴 거면 45권 내용도 과감하게 확 쳐내는 게 좋지 않았나 싶어요. 원래 러닝타임이 세시간이 넘는다는 소리도 있던데, 넣고 싶은 내용 다 넣으려는 욕심이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 영화가 무슨 반지의 제왕 급 대하서사시도 아니고; 사람들이 영화관에 앉아있을 수 있는 한계를 고려해서 시나리오 단계서부터 시간 배분을 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다 찍어놓고 100분 맞추느라 여기저기 구멍 숭숭나게 만들지 말고. 초반에는 정말 빵빵 터지고 재밌었는데, 45권 분량 들어가니까 그렇게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어차피 처음 보는 사람을 고려한 영화였다면 그 상급생 우르르르(원작에서도 개연성이 엄... 싶던 부분)는 좀 가지쳐도 됐을 텐데... 2학년 4학년은 좀 나은데 3학년은 길치 콤비 묶어놓은 줄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게 멍미 싶고. 5, 6학년은 로그인하자마자 로그아웃하고;
2.
그에 비해 극장판 애니는 아예 닌타마에 익숙한 팬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란 느낌이었어요. 늘 처음 보는 사람을 염두에 두는 닌타마 특유의 캐릭터 소개도, 약속 개그도 없어. 닌타마는 원래 스토리 이상으로 캐릭터성이 부각되는 작품인데, 극장판에서는 다들 스토리 안에 녹아들어가서 자기 주장을 심하게 하지 않아요. 시끌벅적함은 많이 줄어들고 굉장히 진지하고 현실적인 묘사들이 늘어나서 신선했습니다. 사소한 장면에서도, 진짜 현실을 눈 앞에 둔 느낌이었어요. 그걸 가장 강하게 느낀 게 사타케의 등장씬. 먼저 둔덕을 내려간 토라와카가 단조를 부르고, 단조는 애들 얘기하는 거 듣느라 어 잠깐만~ 하고 꾸물대고, 헤이다유가 신베 말 고쳐주다가 자기가 헷갈려서 잘못 말해서 다들 배잡고 웃고, 그러는 동안 토라와카가 총에 맞을 뻔하고, 웃고 있던 아이들이 총소리를 듣자마자 후다닥 뛰쳐내려와서 둘은 충격 받아 얼이 빠진 토라와카를 챙기고 둘은 바로 방어태세를 취하는데... 별 거 아닌 이 장면이 현실감이 대단했어요. 극장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두 권을 합친 이야기이긴 해도 각색이 이렇게 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큰 줄기만 그대로고 대사며 상황이며 개그며 싹 들어엎고서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것 같아요. 덕분에 원작 스토리에선 주인공으로 느껴지지 않던 란타로가 실사판 못지 않게 주인공답기도 했고요. '원작의 팬'에게 '평소와 다른 느낌의' 닌타마를 보여주려 했다는 게 전체적인 인상. 전 참 좋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흥행은 더 어려웠던 거 아닐까 싶어요.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지진이겠지만... 이런 퀄리티인데 개봉 시기가 왜 그래가지고... 운도 없지...ㅠㅠ
볼 때마다 엄마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컷. 란타로 수고했다 부둥부둥
그리고 더빙판 감상:
- 번역도 더빙도 정말 좋았어요. 교회도 하지마 인증서도 센스 만점. 철포대장 사투리는 완전 초월 더빙이었어.
- 이사쿠 목소리가 진짜 사근사근 상냥한 선배였고, 케마와 사쿠베가 무시무시하게 잘 어울렸고, 미키랑 코헤이타가 투니닌보다 훨씬 원판에 근접한 느낌. 사부로 목소리도 너무 좋았고, 쇼세이상도 멋졌고, 그런데 라이조는 왜 그 모양이야!!!! 다 좋은데 라이조만!!! TㅍT
- 포탄 배구 부분에서 매번 극장이 빵 터지더라. 혼자서 보면 사실 그렇게 안 웃긴데(내 입장에선 쟤네 배구 하는 거 당연하게 보여서 그런지), 덕분에 저도 많이 웃었어요.
[#M_이하 하치라이 토크|다시 닫자|선발팀 사부로 나올 때 흐르는 단어에 눈을 의심함.
比翼の鳥 連理の枝 一膳の箸 把手共行 碎啄同時
비익조, 연리지, 한 쌍의 젓가락, 파수공행, 줄탁동시
파수공행은 손을 잡고 같이 간다는 뜻이고 줄탁동시는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래요. 한 쌍의 젓가락은 글자 그대로의 뜻이고. 아주 사부로 아이덴티티는 라이조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못을 쾅쾅 박고 있는데 그 앞엔 또 뭐라고요?!?! 비익조에 연리지?!?!?!?!!!!! 세상에 하치라이가 최애커플인 저도 저런 말을 가져다쓸 생각은 못해봤는데 세상에. 이건 단순히 사이좋은 둘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잖아요! 연인이나 부부에게나 쓰는 말이잖아요! 이런 NHK...